다시 Between jobs 다.
무기력하고 우울하지만 괜찮다.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이런 삶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그럼에도 이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살기위해 일을 한다. Job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깨달음이 목적인 스님들 역시 일상의 일들을 예를들면 농사, 밭일, 청소와 같은 생존을 위한 일들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수행자의 마음으로 해내며 살아간다.
요즘 한국사회 취직 쉽지 않다. 비정규직이 당연한 노동의 형태가 되었다.
제발 old generation분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지하고 평생 정규직을 지냈던 분들은 이것이 일정부분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어쨌거나, 이런 between job 기간에는 자기개발과 자기관리를 잘 해내야만 한다. 요즘은 달리기와 트렌드공부 신문읽기 그리고 이전 직장들에서의 일을 복기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넣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연말이라는 기간의 분위기 때문인지 뭐라도 하나 마무리 지어야한다는 초조함이 조금 있다. 그래서 문득 썼다 지웠다 무수히 반복했던 사찰순례기를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늦기 전에...
나는 사찰순례를 특별한 목적에서 떠났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나 스스로가 불교학부 졸업생이고 독실한 불교신자며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정의내리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불교에 대해서 이해를 해보고자하는 목적이 존재했다. 이에 더해 관광, MICE 업계에서 한 발 담그고 있어서 불교문화가 좀 더 널리 알려지게 된다면 나에게 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도 있다. 뭐 조금 도울 수 있는 역할이 내 생에 한 번쯤은 오지 않겠나? 그 때를 위해서 조금씩 단단하게 준비해두고 싶었다.
올해가 가기전에 그래도 조금은 시작해두어야 계속 써내려갈 힘이 생길 것이다.
108 사찰순례는 작년 23년에 모두 마쳤고 회향식은 스스로 했다.
1년이라는 기간동안 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냐 하면,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무 잘쓰고 싶은 마음, 범종을 울리듯 Social Media에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 외국인에게 호소력있게 전달해보고자 했던 마음. 다 좋다. 그런데 어쩌나... 그만한 지식도 글솜씨도 호소력도 없는데...
라는 이런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의 순례기와 사찰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보고 흉내도 내보고, 내 것을 추리고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결국에는, 그냥.. 그냥 써내려가고 마무리짓자.
그리고 다시 순례를 떠나는거야. 라는 생각으로 내 고민을 매듭짓고자 한다.
내 108순례기는 (언제부터 딱 시작이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기억가능한, 그리고 충분한 사진자료와 증거가 있는 20년부터라고 해두면 좋겠다.) 20년부터 24년까지 약 4년간에 걸쳐 한국 땅에 있는 전통사찰에 방문하여 스스로 108배를 수행하고 사찰 경내를 돌며 스스로를 찾고, 다양한 유물들과 역사를 느끼고 또 자연을 느끼는 것에 관한 것이다. 몇가지 사찰에서 제공하는 경험들과 스님들과의 몇마디 대화,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 감동에 관한 것이다.
108 순례기 안에는 33관음성지순례도 포함되어 있다. 33관음성지를 다 돌고 나서 남겼던 감상문이 있는데, 아래와 같다.
33관음성지 사찰순례를 끝낸지 보름이 되었고,
내일 회향식을 하러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방문할 예정이다.
회향식 전 그동안의 기억을 약간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 노트북을 켰다.
이번 사찰순례는 연초에 결심하여 올해 안으로 끝내자는 목표로 시작하였는데,
예상보다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33관음성지를 순례하면서 나는 방문했던 모든 곳에서 108배를 하였다. (솔직히 세군데 제외하고)
정목스님의 유튜브 콘텐츠 108배에 맞춰서 한 배 한 배 진심과 정성으로 수행했다.
108배를 끝내고 가만히 앉아 몇 분간 명상을 했고, 2-3시간 정도 모든 전각들을 돌며 3배를 하며 사찰에 녹아있는 역사와 자연이 주는 기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수행의 경험은 사실 모두가 다 할 수는 있지만(장애인 제외)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이것이 어쩌면 큰 의미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8배의 경우 고작 15분정도만에 끝낼 수 있지만,
그 15분이 어떤 이에게는 무척이나 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다.
이번 사찰 순례는 꼭 33곳을 채우고자 했다기 보다는 전국의 사찰을 모두 돌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wave를 전국에 퍼트려 보고자 했던 의지였다.
그것이 어느새 올해 약 80군데를 방문한 것이 되었는데, 거의 전국을 다 돌아다닌 것이 되었다.
그 동안 방문했던 사찰들을 네이버 지도에 다 찍고 일정과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로는 시간을 낭비했던 건 아닐까?
그냥 놀러다닌 것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소중한 오직 나만의 경험이었다는 사실에 이런 활동이야 말로 진정 나를 위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찰 순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분노였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분노에 휩싸인 한국인들.
2023년이 시작되던 시기 나는 분노라는 감정에 많이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분노라는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득 작년에 사두었던 33관음성지 책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수행을 하지 않는 날엔 분노가 올라온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로 그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하지만 분노가 일 때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나만의 방법 하나를 얻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값진 일인 듯하다.
불교적인 배경에서 20대를 보낸 나는 그동안 여러 도반들, 가족 또는 홀로 사찰들을 방문할 기회들이 많았다.
방문했던 사찰들 중에 많은 곳은 내가 10대 20대에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찰순례라는 목적에서 시작했던 사찰투어는 내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몇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현란한 미사여구를 동반할 수 있는 의미는 아닐 것 같다.
간단하고, 단순하며, 핵심적인 것들이라 생각한다.
첫째는 묵직함이다.
가는 곳 마다 거의 새벽예불에 참여했는데, 새삼스럽게도 문득
매일같이 한낱 한시에 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을 이 한반도 땅 모든 어두운 곳에서 수많은 전국의 스님들이 집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새삼스럽게도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처님의 법이 녹아있는 다양한 예불문과 반야심경을 중생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에 계신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을 위해 쉬지 않고 울려주시는 그 든든함과 묵직함은 이 세상의 희망이고 빛일 것이다. 어찌보면 반도 전체를 한번에 울리는 가장 클래식한 합주일 것이다.
두번째는 사람이었다.
여러 예불과 정근에 참여하면서 굳이 그 자신들만의 시간을 내어 산사에 들어와 염불을 외우는 수많은 불자님들의 기도를 들으면서 어느새 나도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그분들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찰음식을 만드시는 처사님들, 사찰운영을 하고 계시는 수많은 보살님들과 여러 잡일과 연등회 준비 등을 하느라 수고하시는 거사님들에게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사찰 곳곳에 이분들의 사심없는 손길이 닿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사찰 입구에서 당신께서 손수 기르신 몇가지 채소와 과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 그것도 무척이나 추운날, 무척이나 더운날 홀로 푼돈 몇 푼 얻고자 쭈구려 앉아 계시는걸 보면서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초 캐러 올라오셨다는 80이나 돼 보이시는 등굽은 노보살님을 보면서는 마음이 복잡했다.
사찰에 의지하는 수많은 이해관계 당사자분들을 보며 나는 불교를 이용하는 인간은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체로 멀리서 오신 수행단체, 사찰의 전통과 수행에 힘쓰시는 스님들, 이런 분들 덕에 그래도 사찰 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 마음이 놓였다.
세번째는 지혜였다.
나의 기도와 진심을 엿보셨는지 가끔 스님들과 보살님들이 내게 다가와서 몇마디 던지고 가셨던 적이 있다. 자세한 것은 낯가진러워 못쓰겠는데.... 어찌 되었건 그들이 툭 건넨 정제된 몇마디의 말은 나를 몇 일간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이런걸 가지고 인생의 지혜라고 하는걸까.
지혜를 얻기 위해 그동안 몇 가지 철학책들을 읽어본 기억이 있다. 특히 니체와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그리고 파스칼을 좋아하는데, 요약하면 이들은 인간을 중간자적 존재, 불완전한 존재라고 규정하며 완성된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큰 울림과 응원을 준다. 어찌되었건 나는 나만의 초인으로 가는 그 길에서 불자분들이 던지는 몇마디 말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분들의 목소리와 눈빛 그리고 내용은 아마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네번째는 슬픔이었다.
아직까지도 아프고 힘든 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 삶의 상처를 내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몇번의 접촉을 통해 생로병사, 희노애락은 영원하다는 당연한 말도 새롭게 느껴졌다. 이 윤회의 삶은 정말 슬픔 그 자체다. 그러나 이 감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잊고 살아가야할 뿐.
다섯째는 역사였다.
사찰 순례를 하며 가끔 사찰과 관련된 책 몇권을 읽었다. 유홍준님 서적부터 이이화교수님, 그리고 여러 스님들의 책 등등 그리고 사찰 내 비문들…
그런 책들을 읽으며 사찰을 방문하는 것은 과거의 그때, 그분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국의 과거는 언제나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차 있어 한편으로는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과거에도 이 자리에 와서 함께 기도했던 조상님들의 흔적과 숨결을 함께 느끼면서 그들과 함께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고, 그분들과 대화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수많은 굴곡진 역사를 가진 한반도이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천년간 전해내려오는 이 불교의 힘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고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감사함이었다.
늦은 나이라면 늦고 일찍은 나이라면 일찍은 30대 중반, 나의 열정 가득했던 11개월 간의 사찰순례기라고 하자니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짧고 간단할 수록 좋다는 부처님말씀을 변명으로 삼고, 이만 줄이고자 한다.
하지만 회향 후 앞으로도 다시 순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53명의 선지식을 만나러 떠난 선재동자처럼 나는 그정도는 못될 인간이기에 53명의 스님들이라도 앞으로 만나뵙고 싶다는 생각이다.
만나서 지혜를 구하고 또 구한 것들을 나누고 전달할 수 있게 된다면
내가 처한 환경에서는 부처님법에 최선을 다 하는게 되지 않겠나 싶었다.
위의 짧은 나의 감상문은 날 것 그대로이고 가장 솔직한 내 심정이 담긴 글이다.
한편, 앞으로 써내려갈 순례기는 다소 과장과 허위가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왜냐하면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니까) 그럼에도 많은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Between Jobs, again.
I'm feeling powerless and depressed, but it's okay. It was my choice.
Looking back, I sometimes wonder if this kind of life might be what I wanted all along.
Even so, I don't think this is the right attitude toward life.
Humans work to survive. A job is an essential part of life.
Even monks, whose goal is enlightenment, live with an ecological perspective, performing everyday tasks such as farming, fieldwork, and cleaning with the mindset of a practitioner, as these are necessary for survival.
These days, it’s not easy to find a job in South Korea. Non-regular positions have become normal.
I really hope that older generations fully understand that their lifelong regular jobs were an extraordinary stroke of luck for them. Anyway, during a "between jobs" period, one must focus on self-development and self-care.
These days, I've been running, studying trends, reading newspapers, and reflecting on my previous jobs, trying to fill in the gaps where I felt lacking.
However, the end of the year is coming, there’s a sense of urgency to finish something. That's why I suddenly thought that I should write the pilgrimage journal that I had written and erased countless times. Before it's too late...
I didn't set out on this pilgrimage with a special purpose.
However, I define myself as a graduate of the Buddhism, a devout Buddhist, and someone who truly respects the teachings of the Buddha, so there was a desire to understand Buddhism better. In addition, since I am involved in the tourism and MICE industry, I thought it would be beneficial to promote Buddhist culture more widely. Perhaps a chance to help might come to me in my lifetime, so I wanted to prepare steadily for it.
Before this year ends, I think I should at least start, so that I’ll have the strength to continue writing.
I actually completed the 108 temple pilgrimage last year, and held a small concluding ceremony for myself.
I didn't document it for a year because it was too overwhelming.
I wanted to write well, receive many likes on social media like ringing a bell, and present it in a way that would appeal to foreigners. That’s all fine, but what should I do… I didn’t have the knowledge, writing skills, or persuasive power...
So I read a few books on pilgrimage and temples, tried to imitate others, and then filtered out my own thoughts, writing and erasing them over and over...
In the end, I just decided to write it down and finish it. And then, I’ll set out on a new pilgrimage.
My 108 temple pilgrimage (I can’t really pinpoint when it started, but I’ll say from 2020, as I have enough photos and evidence from that year) took place over the span of four years, from 2020 to 2024, during which I visited traditional temples across Korea, performed 108 prostrations, walked around the temple grounds, sought myself, experienced various relics and history, and felt nature. This included some of the temple-provided experiences, brief conversations with monks, and unexpected moments of inspiration.
My 108 temple pilgrimage also includes the 33 Guanyin pilgrimage. After finishing the 33 Guanyin temples, I wrote the following reflection as follows:
Reflection on the 33 Guanyin Pilgrimage
It’s been a fortnight since I finished the 33 Guanyin pilgrimage. Tomorrow, I’m going to visit the Korean Buddhist Cultural Center for the concluding ceremony. I thought it would be good to organize my thoughts before the ceremony, so I opened my laptop.
I decided to start this pilgrimage at the beginning of the year, with the goal of finishing it within the year, but it turned out to be completed faster and more thoroughly than expected.
During the 33 Guanyin pilgrimage, I performed 108 prostrations at every temple I visited (except for three).
Following the guidance of Monk Jeongmok’s YouTube content on 108 prostrations, I performed each one with sincerity and devotion.
After completing the 108 prostrations, I sat in meditation for a few minutes and then spent 2-3 hours walking around the temple, performing three prostrations, and immersing myself in the history and joy that the temple grounds and nature provided.
Such an experience can be done by anyone (except for those with disabilities), but not everyone can truly achieve it. I know very well that for some, the 15 minutes of prostrations might feel much longer.
The purpose of my pilgrimage was not necessarily to visit 33 temples, but rather to visit temples all across the country. It was a desire to spread the wave of my inner self to all parts of the country. Somehow, it became about 80 temples this year, and I ended up traveling almost all over Korea.
While organizing the dates and photos I had from my visits, I wondered if I had wasted my time. Could this just be a leisurely trip?
But on the other hand, I realized that this was an incredibly valuable, unique experience for me. Perhaps this was truly something I did for myself.
The reason I began my temple pilgrimage was anger. Anger toward myself, anger toward the world, and the anger of Koreans caught in the same emotion. At the beginning of 2023, I felt trapped by this emotion. While contemplating ways to release it, I suddenly noticed the 33 Guanyin pilgrimage booklet I had purchased the year before, and that’s how it began. (Honestly, even now, on days when I don't practice, anger still rises within me.)
Now, it's mostly subsided, and I’ve been channeling that anger into unspoken feelings.
However, just having found a way to deal with my anger is valuable in itself.
I spent my 20s with a Buddhist background, and I had many opportunities to visit temples with fellow practitioners, my family, or on my own. Many of the temples I visited were places I had been to in my teens and twenties. But this pilgrimage, with the intent of pilgrimage itself, came to me in a completely different way. There are a few things I can mention, but they are simple and straightforward, not adorned with any flourishes.
First, heaviness. At every temple I visited, I participated in the early morning prayers. It suddenly struck me how amazing it is that every day, countless monks across the entire Korean Peninsula are leading morning, noon, and evening prayers, and that the teachings of the Buddha resonate through these prayers for the benefit of sentient beings and all Buddhas and Bodhisattvas. This unwavering, profound sound is a symbol of hope and light for this world. In a way, it’s the grandest symphonic performance that resonates across the entire peninsula.
Second, people. During the prayers and recitations, I found myself silently praying for the many Buddhists who were performing rituals, and in turn, they were praying for me. I also felt deep gratitude for the laypeople who prepare temple food, run the temple, and carry out various tasks such as organizing the Lantern Festival. If it weren’t for their selfless contributions, I wouldn't be able to enjoy these privileges.
At the temple entrance, I saw an elderly woman selling vegetables and fruits she had grown herself on a very cold or hot day, trying to earn a little money. Seeing this, I finally started to notice the human beings around me.
When I saw an elderly woman, likely in her 80s, carrying herbs up the mountain, my heart grew heavy. Observing all the stakeholders involved in the temple’s operations made me think that I shouldn’t exploit Buddhism for personal gain. But on the other hand, I felt reassured that the presence of monks and practitioners working hard to preserve the temple’s traditions ensured that the temple's meaning wasn’t diminished.
Third, wisdom. Sometimes, monks or lay practitioners would approach me and offer a few words of wisdom. I’m too shy to share the details, but those few words shook me for days.
I remember reading some philosophy books to gain wisdom, especially works by Nietzsche, Wittgenstein, Heidegger, and Pascal. These thinkers define humans as intermediate, imperfect beings, and their words have greatly inspired me in my journey toward becoming my own "Overman." The words of the monks, however, have provided invaluable guidance on this journey.
Fourth, sadness. There were still many who were suffering. I couldn’t fully understand their pain, but I felt it. Praying together with them and through several interactions, I truly felt the cycle of birth, aging, sickness, and death, as well as the inevitable nature of joy and sorrow. This life of samsara is filled with sorrow, but we cannot escape it. We can only forget and live on.
Fifth, history. During my pilgrimage, I read a few books about the temples, including works by Yu Hong-jun, Professor Lee Ihwa, and various monks, as well as inscriptions found in the temples. These readings made me feel a deep connection to the past, as if I were with the ancestors who once prayed in these temples. The history of Korea is filled with sorrow and despair, but by praying with the ancestors, I could feel their presence, and I wanted to speak to them. Despite Korea's tumultuous history, I believe that Buddhism, which has been preserved for over a thousand years, will continue to grow and endure.
Finally, gratitude. In my mid-30s, though it may seem late, I consider these 11 months of pilgrimage full of passion to be an invaluable experience. But as Buddha said, the shorter and simpler, the better. So I’ll conclude here.
But after my conclusion ceremony, I still hope to continue my pilgrimage. Like the boy Seonjae who set off to meet 53 wise teachers, I too hope to meet at least 53 monks in the future. If I can meet people to seek wisdom, and share and pass on the things I've learned, I think that would be the best way to practice the Buddha's teachings in the environment I'm in.
The short reflection above is raw and represents my most honest feelings.
On the other hand, the pilgrimage journal I will write in the future may contain some exaggerations and inaccuracies (because memories are always distorted), but I would still like to ask for your understanding.
Thank you for reading.
Written with the assistance of ChatGPT
Pen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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