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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t/신행과 기록(Practice)

23년 사찰순례의 첫번째 감상

by pensee 2023. 11. 27.

 
33관음성지 사찰순례를 끝낸지 보름이 되었고,
내일 회향식을 하러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방문할 예정이다.
회향식 전 그동안의 기억을 약간은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 노트북을 켰다.
 
 



이번 사찰순례는 연초에 결심하여 올해 안으로 끝내자는 목표로 시작하였는데, 
예상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33관음성지를 순례하면서 나는 방문했던 모든 곳에서 108배를 하였다.(솔직히는 세군데서 못했다)

정목스님의 유튜브 콘텐츠 108배에 맞춰서 한 배 한 배 진심과 정성으로 수행했다.

108배를 끝내고 가만히 앉아 몇 분간 명상을 했고, 2-3시간 정도 모든 전각들을 돌며 3배를 하며 사찰에 녹아있는 역사와 자연이 주는 기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수행이나 경험은 사실 모두가 다 할 수는 있지만(장애인 제외)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이것이 어쩌면 큰 의미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8배의 경우 고작 15분정도만에 끝낼 수 있지만,

그 15분이 어떤 이에게는 무척이나 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다.
 


이번 사찰 순례는 꼭 33곳을 채우고자 했다기 보다는 전국의 사찰을 모두 돌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wave를 전국에 퍼트려 보고자 했던 의지였다.
그것이 어느새 올해 약 80군데를 방문한 것이 되었는데, 거의 전국을 다 돌아다닌 것이 되었다.

그 동안 방문했던 사찰들을 네이버 지도에 다 찍고 일정과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로는 시간을 낭비했던 건 아닐까?

그냥 놀러다닌 것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소중한 오직 나만의 경험이었다는 사실에 이런 활동이야 말로 진정 나를 위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찰 순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분노였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분노에 휩싸인 한국인들.
2023년이 시작되던 시기 나는 분노라는 감정에 많이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분노라는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득 작년에 사두었던 33관음성지 책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수행을 하지 않는 날엔 분노가 올라온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로 그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하지만 분노가 일 때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나만의 방법 하나를 얻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값진 일인 듯하다. 
 
 
불교적인 배경에서 20대를 보낸 나는 그동안 여러 도반들, 가족 또는 홀로 사찰들을 방문할 기회들이 많았다.
방문했던 사찰들 중에 많은 곳은 내가 10대 20대에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찰순례라는 목적에서 시작했던 사찰투어는 내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몇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현란한 미사여구를 동반한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간단하고, 단순하며, 핵심이 그 곳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첫째는 묵직함이다.
가는 곳 마다 거의 새벽예불에 참여했는데, 새삼스럽게도 문득
매일같이 한낱 한시에 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을 이 한반도 땅 모든 어두운 곳에서 수많은 전국의 스님들이 집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새삼스럽게도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처님의 법이 녹아있는 다양한 예불문과 반야심경을 중생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에 계신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을 위해 쉬지 않고 울려주시는 그 든든함과 묵직함은 이 세상의 희망이고 빛일 것이다. 어찌보면 반도 전체를 한번에 울리는 가장 클래식한 합주일 것이다.
 
 
두번째는 사람이었다.
여러 예불과 정근에 참여하면서 굳이 그 자신들만의 시간을 내어 산사에 들어와 염불을 외우는 수많은 불자님들의 기도를 들으면서 어느새 나도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그분들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찰음식을 만드시는 처사님들, 사찰운영을 하고 계시는 수많은 보살님들과 여러 잡일과 연등회 준비 등을 하느라 수고하시는 거사님들에게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사찰 곳곳에 이분들의 사심없는 손길이 닿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을까?

사찰 입구에서 당신께서 손수 기르신 몇가지 채소와 과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 그것도 무척이나 추운날, 무척이나 더운날 홀로 푼돈 몇 푼 얻고자 쭈구려 앉아 계시는걸 보면서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초 캐러 올라오셨다는 80이나 돼 보이시는 등굽은 노보살님을 보면서는 마음이 복잡했다. 
사찰에 얽혀있는 수많은 이해관계 당사자분들을 보며 나는 불교를 이용하는 인간은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체로 멀리서 오신 수행단체, 사찰의 전통과 수행에 힘쓰시는 스님들, 이런 분들께서 중심을 그래도 잡아주고 계시다는 생각에 마음은 놓였다.
 
 
세번째는 지혜였다.
나의 기도와 진심을 엿보셨는지 가끔 스님들과 보살님들이 내게 다가와서 몇마디 던지고 가셨던 적이 있다. 자세한 것은 낯가진러워 못쓰겠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이 툭 건넨 정제된 몇마디의 말은 나를 몇 일간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런걸 가지고 인생의 지혜라고 하는걸까.

지혜를 얻기 위해 그동안 여러 철학책들을 읽어본 기억이 있다. 니체의 말, 인간은 중간자적 존재이다.

초인으로 가는 그 길에서 불자분들이 던지는 몇마디 말은 내가 초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얻는 대단한 응원이다.
그분들의 목소리와 눈빛 그리고 내용은 아마 두고두고 되새기고자 한다.
 
 
네번째는 슬픔이었다.
아직까지도 아프고 힘든 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 삶의 상처를 내가 온전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몇번의 접촉을 통해 생로병사, 희노애락은 영원할 수 밖에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 윤회의 삶 자체가 내게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어쩌겠나. 한낱 인간일 뿐인데....
 
 
다섯째는 역사였다.
사찰 순례를 하며 가끔 사찰과 관련된 책 몇권을 읽었다. 유홍준님 서적부터 이이화교수님, 그리고 여러 스님들의 책 등등 그리고 사찰 내 비문들…
그런 책들을 읽으며 사찰을 방문하는 것은 정말이지 과거의 그때, 그분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국의 과거는 언제나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차 있어 한편으로는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과거에도 이 자리에 와서 함께 기도했던 조상님들의 흔적과 숨결을 함께 느끼면서 그들과 함께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고, 그분들과 대화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수많은 굴곡진 역사를 가진 한반도이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천년간 전해내려오는 이 불교의 힘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고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감사함이었다.


 
늦은 나이라면 늦고 일찍은 나이라면 일찍은 30대 중반, 나의 열정 가득했던 11개월 간의 사찰순례기라고 하자니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짧고 간단할 수록 좋다는 부처님말씀을 변명으로 삼고, 이만 줄이고자 한다.


하지만 회향 후 앞으로도 다시 순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53명의 선지식을 만나러 떠난 선재동자처럼 나는 그정도는 못될 인간이기에 53명의 스님들이라도 앞으로 만나뵙고 싶다는 생각이다.

만나서 지혜를 구하고 또 구한 것들을 나누고 전달할 수 있게 된다면

내가 처한 환경에서는 부처님법에 최선을 다 하는게 되지 않겠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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