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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t/사찰(Temple)

쌍계사

by pensee 2023. 6. 25.

 
작년 나는 좋은 일자리 경험을 얻게 되었다.
수준 높은 행사와 훌륭한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 쌓여
나의 부족함을 절감했고, 의욕만 앞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실 없이 어린아이처럼 갈구만 하다보니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냈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여러 실망감에 나는
올해 초 사찰순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대학 다닐 때도 하지 않던 일을
사회에 나가 책임과 의무를 해야할 때가 오자, 절실해졌던 것 같다.
그 바로 첫 장소가 쌍계사였다. 


 
쌍계사는 하동에 있다.
화개장터가 있는 곳이다.
내가 출발한 2022년 1월.
그 어느 때 보다도 정치적으로 좌우가 나뉘어져 있었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정치가들은 여념이 없었다.
이 시기, 나는 유튜브에서 지금은 現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이신
김한길 위원장님의 인터뷰를 우연히 보게되었다.
 

 
김한길 위원장님은 위의 인터뷰에서 조영남님의 화개장터(1988년 作)를 본인이 작사하였고
이유가 좌우통합을 위한 고민에서 나왔다고 밝히셨다.
88년 시대적 배경은 태어나기 전이라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청년이지만 나는 항상 사회에 관심이 많았고, 좌우가 분열된 상황이 나에게 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쌍계사는 바로 이 화개장터 근방,
영호남을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화개천의 오른편
지리산 남쪽 끝에 위치해 있다.
 
 
쌍계사(雙磎寺)...
대략적으로 한자를 해석해보면
두가지의 물길을 품은 사찰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두 물결을 품은 곳에 쌍계사가 있다.
쌍계사에 방문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까워 지고 싶었고,

뭔가 다른 문화가 있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대구 본가에서 출발해 쌍계사에 홀로 일찍 도착했다.
종무소에 계시던 스님께서
일찍 왔으니 편하게 쌍계사를 이리저리 둘러보시라면서
호리병 모양으로 되어있는 쌍계사 경내가 그려진 브로셔 한 장을 건네주셨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국보로 잘 알려져 있는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 앞에 잠깐 멈춰섰다.
신라 삼최로 유명한 최치원 선생께서 지으신 이 비문은 내게 특별하다.
 
 
대학 시절 모 교수님께서 강제로 수업시간에 외워오라고 시키시고
서울 남산에서 많은 학생과 스님들 앞에서 암송하도록 시키셨던
국유현묘지도 왈풍류 로 시작되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의 인물. 
물론 최치원 선생님은 더 훌륭한 부분이 많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 난랑비서문의 주인공으로서
각별하다. 그 분의 비문이라면 내게 뭔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싶었다.

 
비문을 읽고 있었는데 어느 거사님께서 다가와 이 비문의 훌륭함을 설명해주셨다.
마치 다른 세계로 옮겨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묘했다.
그 분의 설명은 막힘 없었고 당당했고, 내게 정말로 무언가를 전해주려고 하시는 듯한 기분으로
느껴져 귀담아 들었다.
 
"이 비문에 보면 진감선사가 쌍계사를 중창한 이후에
(나무위키에 따르면 의상의 제자인 대비, 삼법이 창건한 것으로 나옴)
국가의 부름에 3번을 거절하며 수행과 전법을 하다가 나중에는
송곳을 꽂을 데가 없을 정도로 대중들이 모여 법을 청하였다... 라고 나오는데
이 문장이 수려하고 최치원의 글솜씨, 그리고 그 당시 진감선사와 불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라면서 내게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서는 마지막에
한국은 중국, 일본, 외세에 많이 끼여있는 것으로 아직도 독립하지 못했으며
국가를 지킬 수 있도록 힘쓰라는 듯한 말을 슬쩍 건네셨다.
말씀하신 부분 전부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쨋건, 나라를 위해서 힘써라는 말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제 능력이 말이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말입니다요.... 슬프기 그지 없어요.
 
 
 
실제로 비문의 해당 부분 아래에는
"이에 선려(禪廬)를 지으니 뒤로는 안개 낀 봉우리에 의지하고 앞으로는 구름이 비치는 골짜기 물을 내려다 보았다.
시야를 맑게 하는 것은 강 건너 먼 산이요, 귓부리를 시원하게 하는 것은 돌에서 솟구쳐 흐르는 여울물 소리였다.
더욱이 봄 시냇가의 꽃, 여름 길가의 소나무, 가을 골짜기의 달, 겨울 산마루의 흰 눈처럼 철마다 모습을 달리하고
만상이 빛을 바꾸니 온갖 소리가 어울려 울리고 수많은 바위들이 다투어 빼어났다.
일찍이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머물게 되면 모두 깜짝 놀라 살펴보며 이르기를,
“혜원공(慧遠公)의 동림사(東林寺)가 바다 건너로 옮겨 왔도다. 연화장 세계는 범부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지만 항아리 속에 별천지가 있다 한 것은 정말이구나” 하였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내가 방문했던 쌍계사의 1월 풍경이 글자 그대로 녹여져 있었다. 
1월 아침 안개가 끼었고, 아래에는 골짜기로 물이 흘렀고, 먼 산에는 녹차밭으로 바뀌었지만 산세가 아름다웠다.
마치 진감선사탑비가 세워졌던 887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큰 힘과 용기를 얻었다.
역사의 큰 줄기 속에 내가 있었고, 나도 그러한 큰 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삶이란 것, 인생은 내가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 항상 생각했다.
맞다. 개척할 수 있다.
하지만, 큰 물줄기를 헤쳐나가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이 마음 같지 않고, 나락으로 떨어질 까 무척이나 두렵지만
그런 역사의 큰 줄기를 본 것 만으로도
나는 두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범패의 원조
지리산 녹차의 원조
섬진강
화개마을
지리산으로 들어감
벚꽃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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